월: 2017 2월

오바마 케어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 변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오바마 케어에 대한 지지가 역대 최고가 되었다는 NYTimes의 기사가 있다.

obamacare

그림에서 나타나듯 오바바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우려와 비판이 더 많았으나 역으로 트럼프를 선택한 후 오바마의 정책에 대한 평가가 올라간 모습이다.

기사에서 말하는 재미있는 점은 오바마 케어의 폐지가 확실시된 상황에서 이렇게 지지도가 반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최근 들어 오바마케어에 대한 보험료가 급격히 상승하고 시장경쟁이 약화되는 등 부정적인 기사들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선호는 반대로 가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의 현명한 국민들이 드디어 진실을 깨달은 것인가?

물론 아니다. 그렇게 현명했더라면 아마 그들은 트럼프를 선택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진실은 John Cluverius 의 논문 에 나타난 주장에 가까워 보인다. 이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정부지출 대한 대중의 선호는 정권을 잡은 정당에 반대되는 경향을 지닌다. 어찌보면 이는 간단한 호텔링의 선형도시 모형의 직관과도 연결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그간 미국인들의 Obamacare 에 대한 낮은 지지는 Care 가 아닌 Obama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오바마가 떠나자 대중들은 남은 care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비로소 오바마케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것이고, 공화당은 이미 부자들이 보험료 납부에 대해 생각보다 덜 저항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트럼프의 광범위한 오바마케어 폐지 노력이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롭다. 배경이 부족한 내 개인의 짧은 생각에 따르면 곧 시작될 미국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함께 엮여 한 파트로 살아남을 것 같다. 트럼프는 ‘오바마’를 지우는 것에 만족할지 케어 자체를 공격할지가 관전 포인트이다.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정책적 완성도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미웠지 지나보면 정책은 나쁘지 않았다는 말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권력 때문에  쉬쉬하다가 지나보면 모두 정책을 싫어하고 뒤엎는다. 최근 가장 공개적으로 정치 장에서 정책적 비판을 받았던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인데 퇴임 후 재평가된 정책은 특별히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KDI를 비롯한 정책연구기관의 능력은 높다고 생각한다. 정부관료의 능력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의 방향성 이전에 존재하는 미비함은 정당이 제대로된 정책연구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다는 생각이 든다. 즉, 대통령 선거의 공약 단계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리더쉽과 카리스마도 중요하지만 정당의 역할이 커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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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은 계속 사용될 용어인가

최근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여러 매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비단 언론사뿐 아니라 유력한 대통령후보들마저 연설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으니 적어도 한국에서는 꽤나 자리잡은 용어로 보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기실 이 용어는 한국의 학계에서는 잘 쓰이지 않으며 세계적으로는 더욱 생소한 용어이다. (독일 정도만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차산업혁명은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의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이 밀고 있는 용어이다. 위의 링크에 가보면 현재 등장하는 각종 융복합 산업의 등장, 스마트 팩토리 등을 4차산업혁명으로 정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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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세계경제포럼은 증기기관과 기계 생산의 등장, 분업과 전기/대량생산, 전자/IT 분야의 등장을 이전까지 1,2,3세대 산업혁명으로 정의하고 현재 4세대 산업혁명이 등장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글은 2015년 9월에 나왔고, WEF에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지 1년이 조금 지난 셈이다. 아직 해당 용어가 많이 퍼지지는 않았다. 구글에 검색해보면 WEF와 클라우스 슈밥이 언급한 것만 줄창 나온다. 그렇다면 이 말은 사이비 유행어인가?

일단 세계경제포럼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자.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각종 보고서를 쓸 때 국가별 순위를 매기고 싶다면 이 곳의 자료를 안 볼 수가 없다. 각종 국가 경쟁력 지수는 대부분 여기서 만든다. 소위 ‘다보스 포럼’이 바로 이 세계경제포럼이다. 나름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어느정도 유명세와 함께 아젠다를 형성하는 권위는 가진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포럼의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클라우스 슈밥이라는 사람은 1938년생인데 1971년부터 세계경제포럼의 회장을 맡고 있다. 33세에 창립해서 지금까지 계속 회장이다. 슈밥은 스위스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케네디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유럽의 국가들이 미국의 혁신을 따라잡자는 취지로 만든 단체가 세계경제포럼인데 벌써 50년이 다 되어간다. 슈밥은 제네바 대학교의 교수직도 맡아왔지만 딱히 다른 학문적 성과는 없고 세계경제포럼의 운영에 주력해왔다.

그래서 이번에 하나 밀어보려고 하는게 이 4차산업혁명인 것 같다. 사실 산업혁명이면 산업혁명이고 제 3의 물결이면 토플러의 물결이론이지 기존에 산업혁명의 차수를 딱히 나눠오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래서 해외서도 큰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명 경제사학 블로그 중 하나인 Capitalism’s Cradle 에 따르면 이러한 산업혁명 분류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아래와 같다.

  1. 증기기관을 첫 번째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너무 좁게 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물과 기계화를 함께 언급해 1세대를 구성한다면 세대를 보는데는 낫지만, 그렇다면 그 시작을 1784년으로 하는것보다 수십년을 당겨야 합니다.
  2. 산업혁명은 ‘발명’의 발명입니다. 그러므로 몇 가지 기술에만 집중해서는 안됩니다. 분업과 같은 개념을 2기에 넣는 것은 애매합니다. 애덤 스미스도 1기의 시기에 분업을 언급했고, 포드 스타일 조립 라인이 이 시기에 나타난 것은 맞지만 분업 개념은 몇몇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ies;GPT)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Anton Howes 는 산업혁명에 대해 두 가지 설명을 제안한다. 아예 이를 나누지 않고 지속되는 혁신으로 정의하거나, 좀 더 엄밀하게 범용기술에 의해서만 분류하자는 것이다. 굳이 범용 기술 묶음을 이용해 시기 분류를 하자면 이번 융합 혁명은 6차 혁명이라는 분류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현재 언론 해외에서도 별 반향이 없고(일례로 유명언론들은 이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구글에서 4th industrial revolution으로 검색했을 때 단 하나 걸리는 이코노미스트의 2012년 기사에 따르면 오히려 지금 오는 변화가 3차 산업혁명이라고 주장한다), 학문적인 기반 또한 약해보이는 이 단어는 그냥 사라져버릴 것인가?

세계경제포럼에서 만든 4차산업혁명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 수는 수십 개에 불과하며 언론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슈밥이 경제학 박사 학위가 있어서 경제학자라고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기실 슈밥은 대학에서도 기업이론을 강의해왔고 세계경제포럼의 아젠다 설정 또한 경영학 영역에 걸쳐있는 경우가 더 많다. 애초에 세계경제포럼의 전신부터가 미국의 사례를 따라잡기 위한 유럽 경영인들의 모임인 ‘유럽경영포럼(European Management Forum)’ 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마케팅 학자인 필립 코틀러가 낸 최근 책 마켓 4.0이 죽어가는 4차 산업혁명 개념에 호흡기를 달아줄 것 같다. 마켓 4.0에서 말하는 시장 변화가 4차 산업혁명에서 말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코틀러의 마켓 1,2,3은 이 산업혁명과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숫자로 사람들의 인지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해할 수 없지만 필립 코틀러의 책 원제에서는 1부의 제목이 ‘FUNDAMENTAL TRENDS SHAPING MARKETING’ 이라고 되어 있지만 한글 번역판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변화시킨 새로운 마켓 트렌드’ 라고 되어 있다. 원문에는 있지도 않은 4차 산업혁명을 굳이 끼워넣은 것이다.

나는 클라우스 슈밥의 4차산업혁명이 왜 하필 4차인지에 대해 고민할 때(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분류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 큰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에 4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물결’과 ‘산업혁명’은 분명 다르지만 사람들은 이를 연장선상에서 인식한다. 실제로, 제 3의 물결 다음에 오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오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 개념이 최대로 성공한다면 언젠가 경영학이나 마케팅 교과서 한 귀퉁이에서 ‘클라우스 슈밥의 산업혁명 세대 구분’ 이라는 내용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가능성은 낮아보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왜 특히 우리나라에서만 이 개념이 각광받는 것일까? 슈밥이 우리나라에 해준 것도 없는데.

국가 경쟁력 순위에 대한 높은 수요로 인해 타국에 비해 세계경제포럼의 인지도가 높은 점과 함께 아젠다 형성, 비전제시를 통한 언론과 출판사의 영업 욕구 정도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사니의 커리어에 대한 단상

존 하사니에 대한 전기적 article을 읽었다.

IDEOLOGICAL PROFILES OF THE ECONOMICS LAUREATES 라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대상으로 한 짧은 페이퍼 묶음인데, 정치적 견해 및 트리비아가 주가 되는 흥미로운 페이퍼이다. 짧다고 해도 무려 71명에 해당하는 내용인만큼 전체 분량은 많기 때문에 짬날때마다 흥미가 가는 사람 위주로 읽고 있다.

하사니는 1920년 헝가리 태생으로 출생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상당히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은 삶을 살았다. 그는 2차세계대전 당시 군사 징집을 피하기 위해 약학을 전공하였지만 1944년 결국 노동지원으로 징집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치의 수용소를 피해 예수교 사제가 소개해 준 지하 피난실로 도망칠 수 있었다.

2차대전 이후 하사니는 부다페스트 대학으로 돌아가 1947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스탈린의 지배가 가시화되고 공산주의가 자리잡게 됨에 따라 사상적 문제로 강사직을 잃고, 자신의 학생이자 이후 아내가 된 앤 클라우버와 함께 헝가리를 떠나게 된다. (앤 클라우버는 이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1950년 고국을 떠나 시드니에 도착한 하사니는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받은 약학, 철학 학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영어 또한 못하는 하사니를 받아줄 직장은 없었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하며 틈틈히 야간 수업을 들어 마침내 1953년 시드니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는다.

헝가리 태생의 약학부 출신 젊은 철학 교수가 전쟁을 경험한 뒤 사상 문제로 망명, 공장에서 일하며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새로운 학문인 경제학을 전공한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두드러지는 삶의 질곡을 느낄 수 있다.

이후 하사니는 1956년 록펠러 장학금을 받아 스탠포드 대학으로 진학, 지도교수인 케네스 애로우를 만난다. 그리고 그 때서야 수학과 통계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하사니 삶의 어려움은 끝나지 않아 심지어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비자 문제로 미국을 떠나게 된다. 시드니로 돌아갔다가 애로우와 토빈의 보증으로 겨우 다시 미국에 돌아오게 되고, 대학을 옮겨 마침내 버클리에서 교수로 자신의 커리어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하사니의 인생 궤적을 보면 전쟁과 정치적 상황이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고 비틀리게 할 수 있는지가 잘 드러나 흥미롭다. 또한, 영어를 잘 못하는 비전공자 출신의 학자가 경제학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은 드문 예로서 시사하는 바 또한 크다할 것이다. 특히, 사상적 문제로 호주로 도피해 언어적 문제와 함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장에서 일하며 새로운 학문을 시작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가히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는 존재라 하겠다.

달리 생각하면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늦게 시작한 학문이 만개한 것은 역시 그의 타고난 재능 탓일수도 있겠다. 하사니가 지도교수인 애로우의 영향을 받아 투표 및 후생, 효용 이론 연구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나 결국 그가 노벨상을 받은 주제는 게임이론이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도 있다.

매우 흥미로운 뒷이야기 하나는, 하사니가 다닌 루터교 김나지움이 바로 게임이론의 창시자인 폰 노이만이 다녔던 학교라는 것이다. 게임이론에 공헌한 두 천재가 같은 곳을 지나쳤다는 것이 운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실은 이 학교가 부다페스트 최고의 명문학교였기 때문에…

초년의 불행 끝에 하사니는 자신의 응용 게임 이론이 사회 조직의 도덕적 분석에도 사용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념 문제로 고국을 떠나 수십년간 고생한 끝에 자신의 이론이 널리 인정받게 되고 이념의 승리에도 일조하였다. 또 직접 공산주의 종말을 목격하였으니 하사니의 삶은 완결성이 있고 전기적 관점에서도 아름답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스스로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재능을 가진 사람이 불행을 딛고 노력해 성공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멋지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