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책

정의는 이가적(bivalent) 문제인가

  • 이 연작에 대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해당 주제의 연작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을 채우기 위해 비축분을 만들어서 가능하면 월,화요일에 올립니다. 저도 잘 모르는 주제이기 때문에 공부하며 씁니다. 저는 해당 분야의 전공자도 아니며 순수히 개인적인 관심에 의해 공부하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쓰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다만 저를 위한 글쓰기가 다른 사람에게도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내용에 대한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 무엇을 다루는가

주로  악셀 호네트와 낸시 프레이저의 논쟁, 그리고 프레이저의 페미니즘 이론, 진보적 사회 해방운동에 대한 소고

 

1.

이가적(bivalent) 문제는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살펴보고 해결하는데 있어 좋은 시각을 제공해준다. 특히 인종이나 젠더 문제를 설명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결국 이는 정의론(Justice)과 연결된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딜레마를 실증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현대 사회에서 정의라면 가장 먼저 경제적 양극화에 따른 분배정의를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정치적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가 성장하며 다양성에 대한 인정욕구 또한 터져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사회적 갈등이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서로 섞여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갈등의 본질을 파악하기 힘들어지며 해결책을 제시하기란 더더욱 지난해진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의 논쟁에서는 이렇듯 섞여있는 문제를 잘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측면의 정의 논쟁을 이가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이 이가적인가? 낸시 프레이저에 따르면 재분배와 인정이다.

재분배(redistribution)란 경제적 층위에서 논쟁이 되는 갈등을 의미한다.

인정(recognition)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저임금 여성 노동의 예를 들어보자. 특히 출산 이후 여성을 중심으로 다수가 저임금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는 단지 재분배의 문제인가? 아니다. 성(gender)에 대한 왜곡된 문화적 편견이 이들 노동자들을 경제적 양극화로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즉, 경제적 양극화는 인정문제를 매개로 현실화되었다.

인종문제 또한 좋은 예시가 된다. 흑인들이 아직까지도 저임금 직종에 많이 종사하는 이유로 여전히 존재하는 문화적 차별의 영향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이주 노동자는 어떤가? 낮은 임금과 문화적 폐쇄성으로 인한 차별과 무시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재분배와 인정 문제는 서로 독자적인 문제이지만 긴밀히 엮여있기도 하고, 단순히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원인과 상관 없이 이 둘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원인에 대한 논쟁이 호네트-프레이저 논쟁의 중요지점이기도 하다)

이 재분배와 인정 문제를 서로 분리하여 보지 않으면 많은 오해가 나타날 수 있으며 사회적 해결책 또한 잘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낸시 프레이저는 이 둘을 분리하여 두 축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악셀 호네트는 무시와 불평등의 문제가 동시에 심화되고 있다는 프레이저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투쟁의 일원화된 관점으로도 분배와 인정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호네트와 프레이저의 주장에서 일치하는 부분은 오히려 나와 같은 한국의 비-해당분야 연구자들에게는 낯설 수 있다. 호네트와 프레이저는 모두 사회적 투쟁의 방향이 분배 투쟁에서 인정 투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전히 재분배 투쟁이 중심이며 문화적 인정 투쟁은 변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시각과는 구별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인정투쟁은 퀴어 문제 정도가 보이고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분배 문제에 집중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네트가 인정 일원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분배문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호네트는 현재의 전세계적 경제 양극화 상황에서 분배문제야말로 가장 심각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호네트가 분배문제를 무시한다는 오해는 호네트와 프레이저의 ‘인정’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둘의 시각 차를 살필 수 있는 핵심적인 주장과 맞닿아 있다.

호네트와 프레이저의 논쟁의 핵심적 문제는 인정으로 환원되지 않는 분배상의 불의가 존재하는가에 있다. 모든 분배상의 문제가 인정으로 환원될 수 있다면 호네트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인정투쟁만으로도 재분배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정으로 환원되지 않는 재분배 문제가 함께 존재한다면 프레이저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재분배와 인정 모두를 사회 정의 투쟁의 두 축으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 유명한 호네트의 저작 ‘인정투쟁’이 먼저 등장했으며 프레이저의 이원론이 이후에 등장해 논쟁을 촉발시켰음을 상기하자. 논쟁의 진행과정 자체가 모호한 개념을 정립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도 있다.

 

 

3.

프레이저의 이원론적 관점은 사회존재론적 차원에서의 이원론이 아니라 관점적 이원론으로 볼 수 있다.

사회존재론적 차원이란 분배는 경제적 차원에 기인한 것이고 인정은 문화적 차원에 기인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 때 둘은 상호침투가 불가능하다. 관점적 이원론이란 분배와 인정을 단지 분석적 관점에서 상호환원불가능한 것으로 볼 뿐 경제적 영역과 문화적 영역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위에서 악셀 호네트가 주장한 분배의 인정으로의 환원가능성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불평등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인정을, 무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배를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문제의 원인이 환원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서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해결책의 사용을 달리할 수 있다는 관점을 말한다.

프레이저의 인정 개념에서 나타나는 무시는 특정한 생활 방식과 정체성에 대한 문화적 지배와 불인정, 그리고 이에 대한 통속적 묘사, 비난, 비방 등의 현상을 의미한다. 즉,  이러한 무시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확정적인 사실이며, 이것만으로 분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 문제가 된다.

프레이저는 크게 3가지 차원에서 분배-인정 이원론을 정당화한다. 사회적 불의의 개념적 스펙트럼을 상상하는 사고실험, 분배-인정 이원론을 정의론적 차원에서 정당화하는 이차원적 정의론,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계급구조와 신분질서로 구별하는 사회이론이 이것이다.

 

분배-인정 이원론 스펙트럼을 살펴보자. 문성훈(2016)에 예시와 함께 잘 정리되어 있다. 프레이저의 스펙트럼의 한 쪽 끝에는 분배의 문제가, 다른 한 쪽에는 인정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이들 문제가 혼재된 문제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분배문제를 겪는 집단은 노동계급이다. 경제학을 공부한 내 입장에서는 동의할 수 없지만, 프레이저에 따르면 노동계급은 근본적으로 생산시설(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자본가들에게 노동을 팔아야만 하는 입장이며, 필연적으로 착취당하게 된다. 이 때 경제적 불평등이 나타난다. 물론 노동계급은 종종 열등한 계급으로 취급받기도 하며, 이는 문화적 불평등의 한 요소로 취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계에서의 무시는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기능한다. 그러므로 이 무시는 경제구조에서 파생된 이차적 요소로 판단할 수 있다. 노동계급에 대한 인정 문제는 분배 문제로 환원가능한 것이다. 즉, 이는 재분배 문제가 핵심이 된다.

반대편에서 인정의 문제가 본질적 요소를 이루는 문제는 동성애자들의 차별이다. 이성애 중심 가치 규범 하에서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종 혐오스러운 것으로 취급된다. 이 때문에 때때로 동성애자들은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이 인정받지 못하며 무시를 당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것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는 노동계급이나 자본계급을 불문하고 모든 계급에 분산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성애자가 겪는 사회적 불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가치규범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둘의 문제가 혼재되어 어느 하나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인종이나 젠더 문제가 그렇다. “착취받는 계급의 특징과 멸시받는 성의 특징들이 결합된 혼성 형태가 존재”하며 이것이 젠더의 사례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여성은 흔히 경제적 영역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먼저 생산 노동에는 임금을 지불하고, 출산 및 가사노동에는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노동구별 때문에, 그리고 임금노동 내부에서는  남성노동을 고임금, 전문직에 배치하고 여성노동을 저임금, 주변부 노동에 배치하는 노동구별 때문에 경제적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불이익은 경제적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남성중심의 문화 탓에 여성적인 것이 평가절하당하는 사회적 압력을 받게 된다. 이 결과 여성은 사생활, 자율성, 자기방어, 평등에 대한 법적 이해나 정부정책, 직업 관행, 그리고 대중문화나 일상생활에서 사회적 평가절하를 당하게 된다. 이것은 인정 영역의 문제이다. 프레이저는 이러한 두 가지 사회적 불의에 근거하여 여성은 경제적 차별과 문화적 무시라는 이중적 차별을 겪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구조와 남성중심주의적 문화가 둘 모두 철폐되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인종 또한 마찬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때 둘 중 하나만 해결되었을 때 등장할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해보자. 성공한 흑인 은행가는 분명 분배적 차원에서의 문제가 해결된 것 사례로 생각될 수 있지만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지 못할 수 있다. 반면 백인 노동자는 문화적 인정 문제로 차별받지는 않지만 자본가에 의해 불합리한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두 이원론적 정의가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사회에 문제가 상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가적(bivalent) 문제이다.

 

 

 

Reference

낸시 프레이저 외, 케빈 올슨 엮음, 문현아 박건 이현재 옮김(2016),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낸시 프레이저의 비판적 정의론과 논쟁들(Adding Insult to Injury), 그린비.

김원식(2009), 인정(Recognition)과 재분배(Redistribution), 사회와 철학 제 17호 2009.4.

이현재(2014), 여성 빈곤의 세 가지 측면: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빈곤-낸시 프레이저의 정의론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 제21권.

문성훈(2016), 프레이저 – 호네트 논쟁의 한계와 대안,  사회와 철학 제32 집 2016. 10.

 

 

 

 

책이라는 재화에 대한 단상

오랜 기간 광고업계에 종사해 제일기획 부사장까지 지냈던 최인아 씨는 책방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는데 이번에는 서점의 도서관화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특별히 새로운 주장은 없지만 ‘책방은 도서관이 아니다’ 라는 입장을 잘 나타낸 간결한 글이다.

이미 여러 차례 논의된 주제인만큼 지겨운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도서정책에 대해서는 항상 여러 이견이 존재하는만큼 책이라는 재화 자체에 대해 한 번 살펴보자. 어떤 정책의 당위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화의 특징에 대해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책은 예로부터 마음의 양식, 지식의 보고 등으로 불리며 장려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져왔다.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긍정적 외부효과를 불러오는 재화라고 볼 수 있다. 의료백신 등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백신은 본인이 병에 걸리는 것도 막아주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백신이 보급된다면 백신을 접종받지 않은 사람도 병을 피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구매하는 개인이 얻는 효용 외에 부가적인 가치를 사회적으로 창출한다면 그것이 긍정적 외부효과이다.

책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책, 지식의 융성이 사회 전체적 인적 자본 축적에 기여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공공도서관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책이 가지는 긍정적 외부효과에 기인한다.

 

또 한 가지 고려할 특징은 책이 경험재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경험재는 탐색재와 함께 살펴보자. 탐색재는 구입 시 잠깐 살펴보는 것으로 가치를 알 수 있는 물건이다. 탐색에 걸리는 시간의 차이 및 정확도 등 경계는 다소 모호할 수 있으나 구입 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재는 구입하고 사용한 뒤에야 가치를 알 수 있는 물건이다. 주로 중고차나 1회성의 공연 등을 사례로 든다.

책은 둘의 사이에 있지만 경험재에 가깝지 않나싶다. 강연, 공연, 영화 등과 그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험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잠재적 구매자들에게 신호(signal)를 보낸다. 브랜드 가치나 명성,광고 등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비자들은 기업이 합리적이므로 신뢰를 잃고싶지 않다면 그간 쌓아온 브랜드 가치에 걸맞는, 쏟은 광고비에 걸맞는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물건을 구입하고 기업 또한 실제로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책과 가장 흡사한 영화/공연 등의 콘텐츠는 티저 영상이나 소개 팸플릿을 제작하거나 주연배우, 감독 등을 내세워 광고를 한다. 따라붙는 평론가들과 사전 시사회 방청자들의 평은 덤이다. 책보다 더 재화에 대한 접근을 차단할 수 밖에 없는 영화 및 공연 등의 콘텐츠가 이런 노력을 경주하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물론 책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상대적으로 영화나 공연에 비해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다. 또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의 수도 영화감독, 배우, 공연 기술자 등에 비해 무척 많다. 이렇듯 쉬운 제작 때문에 너무 많은 종류의 책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케팅을 통한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별도의 체험판을 제공하거나 부가적 정보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간단하게 넘겨봄으로써 확인하게 하는 전시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 조합의 결과는 어떤가? 책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장려되어야 한다는 논지와 더불어 구매 이전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판매하기 쉽다는 논리가 결합되어 판매와 체험이 너무나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읽을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면 문화적 저변이 형성되어 책의 판매가 늘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나이브한 이야기이다. 직접적인 데이터상의 상관관계도 뒷받침되지 않거니와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날 것으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서 기회의 장려는 기업이 나서서 할 일이 아니다. 외부효과로 인한 시장실패는 정부가 교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이미 운영되고 있는 공공도서관에 대한 홍보 등으로 대체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대형 서점이 독서 기회를 장려하며 고통은 출판사에도 전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네 서점은 더욱 위축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야말로 생색은 대형서점이 내고 부담은 다른 쪽이 나눠 지는 형국이다.

 

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은 단순히 책에 대한 탐색 기회를 높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개별 개인의 책에 대한 선호가 떨어지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어떤 산업도 도서 산업과 같은 정책을 펴지 않는다. 탐색 및 체험 기회를 늘리는 것은 먼저 소비자의 필요에 따른 상품을 제작하고 이를 알리고자 할 때나 유효한 전략이다. 먼저 책은 도서관에서 보거나 콘텐츠 제작자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기 위해 구입해서 보아야 한다는 인식을 주어야 한다. 오히려 책에 대한 체험의 기회를 줄이고 전문가 서평이나 도서판 로튼토마토와 같은 유저 리뷰 사이트 등의 정보 제공 채널을 늘리는 편이 올바른 접근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도서 정가제 등 인센티브 구조를 외면한 탁상행정식 정책이 사라지고, 다양한 가격 정책과 e-book 등 새로운 유통 플랫폼의 활성화를 시도하게 해야 한다. 책의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실물 책에 대한 체험 기회가 적기 때문이 아니다. 문자를 이미지와 영상이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장 재생 난이도가 높은 동영상마저도 온라인, 모바일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이다. 아무리 서점에서 책을 제공하더라도 항상 쥐고 있는 휴대폰보다 접근성이 높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잡지나 신문 등 구독 활자 매체들은 기존 인쇄매체와 인터넷판을 결합하여 판매하고 있다. 책을 구입할 때 e-book과 번들링한 버전을 선택할 수 있는 등 근본적인 제품의 특질 변화를 자유롭게 시도하게 해야 한다. 단순한 체험 기회의 증대로는 수요를 변화시킬 수 없음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서점이 살아야 출판사가 사는 것이 아니며, 출판사가 양질의 책을 만들어내야 유통상인 서점이 득을 보는 것이다. 휴대폰 제조사가 휴대폰을 잘 만들어야 유통 대리점들이 많은 수익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책은 반대로 되어 있다. 체험 기회를 주다가 대량의 리퍼폰을 제조사에 떠넘겨 부담을 주고 원가 절감 압력을 통해 질을 떨어뜨리는 상황이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 품질이 떨어진 책들조차 – 접힌 부분이 생기거나 약간의 손 때가 묻은 책들 – 할인판매할 수 없게 막아둔 도서정가제이다. 악성재고를 만들게 하고 덤핑조차 못하게 한다.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없는데 판촉행사만 많이 한다고 물건이 잘 팔릴 리가 없겠다.

대형서점의 역할이 줄어들고 저자, 출판사와 정부가 협력해야 한다. 책의 긍정적 외부효과에 주목해 도서관에 들어가는 책과 e-book에도 인센티브가 생기는 제도 등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만이 책이라는 재화의 본질에 역행하지 않고 독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여 산업을 유지하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