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4차산업혁명

로봇은 세금을 내야할까요?

coffeebot-cropped

 

빌 게이츠는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세금을 냅니다. 기계는 세금을 내지 않죠. 그런데 로봇은 인간을 대체해버립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기존의 기계와 달리 로봇(휴머노이드를 떠올려봅시다)들은 세금을 내는게 옳은 것 아닐까요?

게이츠의 주장은 정확히는 공장 자동화에 대해 세금을 물려 세원을 확보하고 그 재원을 이용해 사람이 좀 더 우월한 영역, 이를테면 노인이나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이러한 세금을 물리게 되면 공장의 자동화는 늦춰지게 됩니다. 기업은 한계적으로 의사결정하고 세금을 내야 한다면 로봇의 가치는 작아질테니까요. 그리고 빌 게이츠는 이 ‘자동화 감속’에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득분배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업이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나서야 함을 다시 한 번 역설하고 있습니다.

아마 게이츠의 주장은 불평등 문제나 산업구조의 변경으로 발생하는 많은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재원을 기존의 방법으로 마련하기 어려우므로 아직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 파레토 효율의 개념을 연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 영역에서 재원을 마련하자는 현실적 문제와 결부되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잘 알려진 마술같은 개념적 트릭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게이츠의 원문 주장에 깔려있는 경제학적 근거는 어떤 것일까요? 우리 시대 최고의 혁신을 이끈 기업가가 혁신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말할 때는 비단 분배 목적의 구호뿐 아니라 나름의 통찰이 있을 것입니다.

Tyler Cowen은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행복에 대한’ 외부효과라고 말합니다.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인간에 대한 돌봄이 증가하게 된다면 이는 낮은 기계대체율로 인한 비효율을 커버할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책이나 교육, 백신 서비스가 대표적입니다. 이들 긍정적 외부효과를 가진 재화들은 흔히 시장에서 사회 최적 수준으로 공급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나서 낮은 가격에 교육, 백신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로봇을 인간의 노동으로 대체하는 대신 천연자원 등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이는 혁신만 늦추고 실제 긍정적인 고용효과나 일자리 창출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로봇에 세금을 매겨 혁신을 포기하는 대가로 기업이 추구하지 않는 국가 전체의 ‘인간의 행복’ 을 원했는데, 로봇에서 도피하여 다른 곳에 도착한다면 기업의 최적 선택만 방해한 꼴입니다.

결과는 로봇, 인간노동, 다른 대체 생산요소의 탄력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로봇에 대한 탄력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효과도 뛰어날 것입니다.

실증 결과는 어떨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기계의 생산성이 올라가고 대체되어왔음을 상기해야합니다. 결국 로봇은 필수적인 자본재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은 로봇에 대한 수요 탄력성은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도 기계와 사무 자동화 기기는 수없이 등장해왔습니다. 로봇만이 특별취급 받아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모든 경제주체는 한계적으로 생산합니다. 오래동안 이어져온 노동-자본의 7:3 내지는 6:4 비율 생산 기여가 깨지게 될 때 부의 격차는 커지게 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과세 구조를 급격하게 변경하는 것은 생산 위축을 가져와 조세의 총 수입량 자체를 줄여버리는 ‘하향 평준화’를 낳을 수 있습니다.

외부효과에 대한 고민은 실증적(emprical)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로봇을 새로운 조세 영역으로 선제적 확보, ‘인간 특화형’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생산요소의 효율성 관점에서도 마찰적 실업의 기간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동통신시장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정부가 기존에는 사용하지 않던 주파수를 천연자원으로 규정, 판매해 연간 수조 원의 세입을 확보한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여기까지 온다면 질문을 논의를 축약한 하나의 아이러니컬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봇은 인류 앞에 내려온 새로운[우리 모두가 누리는] 자원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기존의 노동을 대체하는 자본재에 불과할까요?

핵심은 의외로 철학적 문답이 아니라 로봇이 가지는 실증적인 노동 대체율일지도 모릅니다.

4차산업혁명은 계속 사용될 용어인가

최근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여러 매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비단 언론사뿐 아니라 유력한 대통령후보들마저 연설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으니 적어도 한국에서는 꽤나 자리잡은 용어로 보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기실 이 용어는 한국의 학계에서는 잘 쓰이지 않으며 세계적으로는 더욱 생소한 용어이다. (독일 정도만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차산업혁명은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의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이 밀고 있는 용어이다. 위의 링크에 가보면 현재 등장하는 각종 융복합 산업의 등장, 스마트 팩토리 등을 4차산업혁명으로 정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th-industrial-revolution

이렇듯 세계경제포럼은 증기기관과 기계 생산의 등장, 분업과 전기/대량생산, 전자/IT 분야의 등장을 이전까지 1,2,3세대 산업혁명으로 정의하고 현재 4세대 산업혁명이 등장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글은 2015년 9월에 나왔고, WEF에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지 1년이 조금 지난 셈이다. 아직 해당 용어가 많이 퍼지지는 않았다. 구글에 검색해보면 WEF와 클라우스 슈밥이 언급한 것만 줄창 나온다. 그렇다면 이 말은 사이비 유행어인가?

일단 세계경제포럼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자.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각종 보고서를 쓸 때 국가별 순위를 매기고 싶다면 이 곳의 자료를 안 볼 수가 없다. 각종 국가 경쟁력 지수는 대부분 여기서 만든다. 소위 ‘다보스 포럼’이 바로 이 세계경제포럼이다. 나름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어느정도 유명세와 함께 아젠다를 형성하는 권위는 가진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포럼의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클라우스 슈밥이라는 사람은 1938년생인데 1971년부터 세계경제포럼의 회장을 맡고 있다. 33세에 창립해서 지금까지 계속 회장이다. 슈밥은 스위스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케네디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유럽의 국가들이 미국의 혁신을 따라잡자는 취지로 만든 단체가 세계경제포럼인데 벌써 50년이 다 되어간다. 슈밥은 제네바 대학교의 교수직도 맡아왔지만 딱히 다른 학문적 성과는 없고 세계경제포럼의 운영에 주력해왔다.

그래서 이번에 하나 밀어보려고 하는게 이 4차산업혁명인 것 같다. 사실 산업혁명이면 산업혁명이고 제 3의 물결이면 토플러의 물결이론이지 기존에 산업혁명의 차수를 딱히 나눠오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래서 해외서도 큰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명 경제사학 블로그 중 하나인 Capitalism’s Cradle 에 따르면 이러한 산업혁명 분류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아래와 같다.

  1. 증기기관을 첫 번째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너무 좁게 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물과 기계화를 함께 언급해 1세대를 구성한다면 세대를 보는데는 낫지만, 그렇다면 그 시작을 1784년으로 하는것보다 수십년을 당겨야 합니다.
  2. 산업혁명은 ‘발명’의 발명입니다. 그러므로 몇 가지 기술에만 집중해서는 안됩니다. 분업과 같은 개념을 2기에 넣는 것은 애매합니다. 애덤 스미스도 1기의 시기에 분업을 언급했고, 포드 스타일 조립 라인이 이 시기에 나타난 것은 맞지만 분업 개념은 몇몇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ies;GPT)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Anton Howes 는 산업혁명에 대해 두 가지 설명을 제안한다. 아예 이를 나누지 않고 지속되는 혁신으로 정의하거나, 좀 더 엄밀하게 범용기술에 의해서만 분류하자는 것이다. 굳이 범용 기술 묶음을 이용해 시기 분류를 하자면 이번 융합 혁명은 6차 혁명이라는 분류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현재 언론 해외에서도 별 반향이 없고(일례로 유명언론들은 이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구글에서 4th industrial revolution으로 검색했을 때 단 하나 걸리는 이코노미스트의 2012년 기사에 따르면 오히려 지금 오는 변화가 3차 산업혁명이라고 주장한다), 학문적인 기반 또한 약해보이는 이 단어는 그냥 사라져버릴 것인가?

세계경제포럼에서 만든 4차산업혁명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 수는 수십 개에 불과하며 언론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슈밥이 경제학 박사 학위가 있어서 경제학자라고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기실 슈밥은 대학에서도 기업이론을 강의해왔고 세계경제포럼의 아젠다 설정 또한 경영학 영역에 걸쳐있는 경우가 더 많다. 애초에 세계경제포럼의 전신부터가 미국의 사례를 따라잡기 위한 유럽 경영인들의 모임인 ‘유럽경영포럼(European Management Forum)’ 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마케팅 학자인 필립 코틀러가 낸 최근 책 마켓 4.0이 죽어가는 4차 산업혁명 개념에 호흡기를 달아줄 것 같다. 마켓 4.0에서 말하는 시장 변화가 4차 산업혁명에서 말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코틀러의 마켓 1,2,3은 이 산업혁명과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숫자로 사람들의 인지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해할 수 없지만 필립 코틀러의 책 원제에서는 1부의 제목이 ‘FUNDAMENTAL TRENDS SHAPING MARKETING’ 이라고 되어 있지만 한글 번역판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변화시킨 새로운 마켓 트렌드’ 라고 되어 있다. 원문에는 있지도 않은 4차 산업혁명을 굳이 끼워넣은 것이다.

나는 클라우스 슈밥의 4차산업혁명이 왜 하필 4차인지에 대해 고민할 때(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분류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 큰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에 4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물결’과 ‘산업혁명’은 분명 다르지만 사람들은 이를 연장선상에서 인식한다. 실제로, 제 3의 물결 다음에 오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오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 개념이 최대로 성공한다면 언젠가 경영학이나 마케팅 교과서 한 귀퉁이에서 ‘클라우스 슈밥의 산업혁명 세대 구분’ 이라는 내용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가능성은 낮아보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왜 특히 우리나라에서만 이 개념이 각광받는 것일까? 슈밥이 우리나라에 해준 것도 없는데.

국가 경쟁력 순위에 대한 높은 수요로 인해 타국에 비해 세계경제포럼의 인지도가 높은 점과 함께 아젠다 형성, 비전제시를 통한 언론과 출판사의 영업 욕구 정도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